일용할 지식/2.사고,이론

[스크랩] 숭례문 화재.....2008.2.10-11

도아meein경미 2008. 2. 17. 16:07

 

    숭례문  화재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로 인하여 전소되었습니다.

2008년   2월 10일 저녁  8시경에 화재가 발생하여  2월 11일 새벽 3시쯤에  

완전 소각되어 화재진압이 끝났습니다.

 

새벽까지 줄곧 뉴스를 보는 동안 불이 난것도 어처구니 였고

불을 끄는 것 또한   황당하여 발을 동동 구를수 밖에요.

이미 뉴스 보도를 통해 익히 다 아시리라 여깁니다.

참담하고, 분하고...헛헛한 마음에....속상하네요.

어쩌다...이 지경까지나....

 

자료로서 나름대로 정리 해둡니다. (TV를 보면서 화면을 찍은것과 

숭례문에 관한, 화재에 관한것을 나름대로 정리해둡니다)

 

 

 

숭례문 /서울 숭례문의 전경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함.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4가에 위치한 조선 초기 한양의 성문.
 
 
 
숭례문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화재 사진
 
1차 진압이 된듯한 숭례문
이때만 해도 다 끈듯한 안심과 일부는 철수를 하는모습이었는데....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차 진압은 이미 시기와 방법등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속에 ....
물도 딸리어 제대로 못뿌리고 뿌려진 물들도 불길에는 미치지 못하고.....참내....
 



  



  



  


  



  



  


마침내 새벽 1-2시에 무너져 내립니다.

눈물이 납니다.


 


  



  

  

  

 

이상 위 사진은  숭례문 화재를 속보로 방영되는 YTN 뉴스를 위주로

4-5시간에 걸쳐 사진을 찍은것입니다.

안타까운것은  그 시간대에  KBS 와  MBC , SBS는 딴청부리듯 하더이다.

(속보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영화와 오락프로를 계속하였슴)

 

아래 사진은  화재 진압이 마무리 된후 특집으로 숭례문에 대한 취재때 찍음









 

폭격맞은듯 1,2층 누각이 뻥 뚫려져 폭삭 가라?은  숭례문 사진

국보 1호 숭례문이 끝내 화재로 무너질때  온 국민들은 억장이 무너지고

마치 우리나라가  무너져 내리는것 같은 마음이었다고들 합니다.

 

 

 

발을 동동구르고 안타까와 했던 그 시민들이 불탄 숭례문에 조화를....

 

헌화와 통곡

 

  
 

 

불행중 정말,정말 다행....이라면

양녕대군의 친필로 쓴 현판 "숭례문"이  다소 파손?지만 화재에서 건져냈다는것

다시 복원한후에 이 현판이 600년의 숨소리를 고스란히 토해 낼것 같아서....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1층 누각 지붕 추녀마루 끝에 하나만 남은 잡상이 꿋꿋이 버티고 있다.

남아있는 잡상은 삼장법사를 형상화한 대당사부로 궁성과 궁전건물 지붕에서 길상의 상징으로

추녀마루를 지키던 잡상들 맨 앞쪽에 자리한다.(성호기자 tray92@munhwa.com)

 

이 사진을 보면서  솟아날 구멍을 느낍니다.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앙당문 그 불끈한 의분에서 다시금 우리의 맥을 느낍니다.

 

 

 

국보 1호 숭례문 방화범은

2006년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지른 전력이 있는 69세 노인으로 밝혀졌다.
방화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기대보다 적은 토지보상금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방화범 채 모씨는 숭례문 외에 열차 등 대중교통에 대한 '테러'도 계획했다고 진술해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기막힌....분통나는 일이네요. 

 

    

 


 

숭례문(남대문)  옛모습 사진

 

 

호주사진작가.조지 로스.

 

 

 

1951 전 국토를 포연이 뒤덮었던 한국전쟁 중에도 숭례문은 무사했다.

600년 가까이 견뎌 온 숭례문은  임진왜란  6.25 동란을등  숱한 전쟁을 목격하면서도

자신의 당당한 모습만은 잃지 않았다.

당시 포격에 의해 석축과 지붕 등이 훼손된 가운데서도 말이다.





1963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1961~63년 대규모 해체·복원 공사가 진행됐다.

 2008년 우리의 마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기 직전 숭례문 모습이다.

‘축. 중수 준공’이란 축하문구가 오히려 애달프게 느껴진다.





숭례문 야경 (펜펜님 블로그에서 퍼옴)

 

 

 

 

 

 

 

 

 

 

   건축적 특징   
 
석축을 높게 쌓고 그 위에 2층의 누각을 세운 성곽문이다. 석축의 중앙에는 홍예문을 내고

철문을 달아 도성의 출입객들을 통제하였다. 홍예문에 들어서면 화려한 용무늬가 그려진

홍예반자가 눈에 들어온다. 석축위에는 약 1미터 남짓한 여장(女墻;성벽위에 둘러 쌓여진 담.

활이나 조총들을 쏘기위한 타구가 있음)을 두르고 양 측면에 협문을 달았으며,

문루 바깥둘레 바닥에는 판석을 깔았다.


 

석축 위에 세운 문루는 상ㆍ하층 모두 정면5칸, 측면2칸의 규모를 가진 우진각지붕의 건물이다.

굵직한 두리기둥(원형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높은 창방을 얹고 다시 그 위에 넓적하고

두툼한 평방을 돌리고 공포를 올렸다.

공포는 다포식으로 외3출목 내2출목으로 그 형태가 외포의 살미첨차 쇠서의 곡이 심하지 않고,

내포에 파련각(덩굴나무가 서리어 나간 모양의 무늬)되어 있지 않은 등 조선 초기 다포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내부 중앙에는 고주(高柱)를 세워 상층의 마룻보까지 떠받게 하였으며,

그 자체가 마루대공 역할을 하여 견고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중앙의 고주로 인하여 대들보는

합보하는 구조가 되었고, 1층의 네 귀 안쪽에 귀고주를 두어 상층의 귀기둥이 되도록 하였다.

이는 성문의 특성에 맞는 위용있는 구조기법을 적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층은 홍예문 상부인 중앙칸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나머지는 흙바닥으로 되어있으며, 하층

동북쪽에 놓인 목조계단으로 출입하는 상층은 바닥에 마룻널을 깔았다. 중방과 상방사이에

광창(光窓)이 나 있으며, 상부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우진각지붕인 지붕은 상하층

모두 겹처마로 사래끝에 토수(吐首;추녀, 사래 끝에 끼우는 용두형의 기와)를 끼우고

내림마루위에 잡상(雜像;추녀마루에 얹은 장식용 기와)과 용두(龍頭;지붕 용마루 또는 귀마루에

올려놓은 용머리형의 장식기와)를 올려놓았다.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鷲頭; 지붕마루의

양끝머리에 망새 머리 모양을 새긴 장식기와)를 올렸는데 취두는 국가나 사회적으로 격식이

높은 건물에만 사용되던 것으로 숭례문의 격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상....

숭례문 화재와 관련한 자료를 정리해봅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그 광경을 고스란히 두눈뜨고 보아야? 했던

그날밤의 어처구니 같은 분통함이  아직 채 가라 앉지 않습니다.

 

정말, 어쩌다 이지경까지 이르렀는지...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관리현황, 화재발생, 화재진압등의 결과에 서로 발뺌하는 모습들에

할말을 잃고 맙니다.

 

이 사고를 기회로 우리네 문화재가 꼭 더큰 화재손실을 입지 않도록 철저하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

 

 

2008.  2.  17. 정리함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

 

 

 

 

P.S

 

이구동성입니다.

어쩌다 이지경에 이르렀는지.

더나아가... 숭례문 소실을 보면서 국민의 상당수가 

이 나라를 걱정하고 우려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새해에 이르러,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매우 침울한 조짐으로 보여지는것 같아

내심 조바심도 생깁니다.

 

 

삼성 비자금사건, 서해안 기름유출사건,  BBK사건에....숭례문 소실까지....

경제적으로는 원유가도 오르고 어지간한 원자재까지 급등하고...

무역외수지, 경상수지도 악화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아직도 줄기차게 해외에서 달러를 쓰고 다니는 우리네 모습이지요.

 

거기다가  청년실업은 수위를 넘어  기가 꺾여진 상태고

부유층과 빈민층의 격차는 자꾸 벌어져서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어지네요

청년들은  결혼도 안(못)하고 아이도 안(못)낳고 노령화만 깊어지고....

농촌에선 국제결혼의 폐해도 자꾸 돌출되어 심각성도 우려됩니다.

 

종당간엔...결국은 소시민들의 민심이 흉흉하여져

국력이 쇠하여지고 어쩐일이 또 터지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숨길수 없습니;다.

 

이제, 브레이크를 한번 과감히 밟아야할때 같습니다.

 

이나라의 위정자 여러분께서 부디 감안하시어서  소시민의 입장에서

감안하여 충정으로 임하여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시 보고픈 사진 하나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1층 누각 지붕 추녀마루 끝에

하나만 남은 잡상이 꿋꿋이 버티고 있다.

남아있는 잡상은 삼장법사를 형상화한 대당사부....

 

이 사진을 보면서  주먹을 불꾼쥐어지는 어떤 힘을 , 오기를 느낍니다.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앙당문 그 불끈한 의분에서 다시금 우리의 맥을 느낍니다.

 

그리고 남아진 숭례문 현판에서 용기와 감사를 합니다.

출처 : 노란햇살담긴 오후나절의 커피한잔
글쓴이 : 까망가방하양필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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