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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선아라리의 향수 아우라지
도아meein경미
2006. 5. 7. 12:13
정선아라리의 향수 아우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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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지천(앞)과 송천(왼쪽)이 합쳐지는 아우라지
전경 |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임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정선아라리
가락만 들어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소용돌이치는 알지 못할 회한과 동경, 정처없이 떠나고 싶은 역마의 충동을 억제할 수가 없다. 무어 그리 한많은
삶도 아니겠건만 노랫말 하나하나의 간절한 사연들. 애절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한숨과 뒤섞여 속울음이라도 터뜨려야할 만큼 절절한 가락.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아픔같은 그런 류의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음은 웬 탓이런가. 그래
틈이 나면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 정선 산골짜기를 찾아든다. 발길을 나설 적마다 거르지 않고 아우라지를 한 바퀴 도는 일은 산골 나그네의 빠뜨릴
수 없는 산 팔자 물 팔자.
서투른
정선아리랑의 가락을 읊조리며 터덜터덜 찾아가는 언제나의 아우라지 길. 그 길은 오래 잊었던 연인을 만나러 가는 설렘의 길이요, 한평생 타관을
유전하다 고단한 발길로 옛집을 찾는 이의 향수와도 같다.
아우라지는
천오백리 굽이굽이 한강줄기의 시원이 되는 깊은 골이다. 동으로는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 잔의 물이 임계를 거치며 골지천이 되어 여기에
이르고, 서북으로는 황병산에서서 시작한 물줄기가 횡계와 배나드리를 돌아 송천을 이루어 아우라지에서 골지천과 합류된다. 두 개의 물줄기가
아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 아우라지가
비단 정선뿐이겠는가.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수되는 곳도,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역시 ‘’두물머리‘다. 뿐인가 유관순의 고향
’아우내‘ 병천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는 냇물이고 여울이나, 아우라지부터는 물의 양이나 그 흐르는 폭이 강을 이룬다. 이름하여 조양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조양강이 정선읍내를 지나면 동강이 되고. 영월에 이르러 서강을 만나면 남한강이 되니, 아우라지야말로 한강이란 이름의 시원(始源)이라
해도 좋다. 정선은
일대를 골골이 휘돌아 흐르는 물이 정답고 첩첩한 연산의 두메산골이어서 더욱 좋다. 강줄기를 따라 떠또는 나그네길은 유장하게 흐르는 물처럼이나
한없이 유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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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임을 기다리는 아우라지처녀상 |
여량과 유천리를 건네주는
나룻터 |
서두의
‘아라리’ 가사는 정선아리랑을 대표하는 애정편의 가사 한 구절이다. 아라리 노랫말은 정형이 없다. 누구든 가슴 속의 응어리를 아라리 곡조에
맞추어 풀어내면 그것이 곧 아라리의 가사가 된다. 그러기에 대충 알려진 가사만도 500여 편. 대개의 내용은 청춘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애정과 첩첩산골에 갇혀 살아야 하는 응어리진 삶의 표현들이다. 때로는 어린 신랑의 성장을 기다려야 하는 나이든 신부의 자탄이나
남편을 뗏목꾼으로 떠나보내고 기다리는 아낙네들의 가슴에 맺힌 신세한탄이 주조를 이룬다. 처음에는
가락에 얹지 않고 바쁜 사설로 엮어지다가 단조로움이 덜어지면서 호흡이 긴 가락으로 이어진다. 전문 노랫꾼이 아닌 토박이 산골민들의 투박한 음정과
음색. 애조 띤 느낌이며 콧소리는 다듬어진 않은 이웃 촌부의 가락이다. 가락이 구슬프고 구성진 것은 민초들의 한이 깊었던 탓이 아닐까.
산이 깊고 높아서 울고 들어왔다가 나갈 때는 순박한 인심에 다시 울고 나간다는 정선의 인심과 산수를 드러냄이기도 한 것이겠다. 그 가락엔
온갖 삶의 땟국물들이 그대로 묻어나서 더없이 좋다. 아우라지에서 터박고 살아온 어르신이면 어느 누구를 잡고 들어보아도 아라리 한 곡 쯤은
읊조려 댄다. 옛적 내 어머니께서 들일을 하시며 흥얼거리던 소리도 따지고 보면 ‘괴산아라리’가 아니었을까. 그만큼 정선의 아라리는 생활
속에서 묻어난 삶의 소리요, 꾸밈이나 과시를 드러내기 위한 소리가 아닌 것이다. 정선 아리리엔 사연도 많다. 애정편도 산수편도 수심편, 조혼편도
모두가 다 서러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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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 노래비 |
나룻터 아래쪽에 놓인 돌다리 |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명사십리가 아니어든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삼월이 아니라며는 구견새는 왜 울어.‘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 ‘정선 아리랑’. 아우라지엔 여전히 남쪽의 여량리와 북쪽의 유천리를 건네주는 나룻배가 있어 노랫말의 운치를 더해준다. 물론
훨씬 아래쪽에 잘놓인 현대식 다리가 있고, 근래에는 강을 건너는 돌다리와 징검다리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역시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아우라지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 조양강 물 가운데서 골지천과 송천의 두 물줄기를 바라보아야 아우라지를 실감할 수 있다. 두 물이 만나는 건너편
삼각점엔 ‘애정편’의 주인공인 ‘아우라지 처녀상’이 강줄기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고나. 장마로 물이 늘어 만날 수 없는 임이며, 멀리
떠나가 소식이 없는 야속한 임을 기다리는 처녀의 애뜻한 표정은 보기에 따라서 애처로움을 자아내게 한다.
구절리역이
외따라지면서 정선선 꼬마열차의 종착지가 된 아우라지. 역 이름도 여량역에서 아우라지역으로 바뀌었으니, 아우라지는 이름만큼이나 유서가 있고 정한이
깃든 곳이다.
2006.
5. 1. 낭산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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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산골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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